어린이철학자1_생각을 이끌어내는 대화
1. 죽음과 상실에 대하여
어린이들은 지나칠 정도로 정직하고 자극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곤 한다. 또한 자신의 개인적인 지식을 구체적으로 적절하게 설명할 방법을 찾는다. 죽음과 같은 주제를 다루는 대화에서도 어린이만의 두드러진 탐색방법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사례는 다음과 같다. 한 초등학교 학급에서 어린이가 『존 브라운, 로즈와 한밤중의 고양이(John Brown, Rose and the Midnight cat)』(Wagner, 1977)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애완견과 로즈 아줌마가 사는 평화로운 집에 어느 날 밤 고양이가 방문하는 내용의 책이다. 이 책은 상실, 변화 속에서 일어나는 질투와 소유욕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야기를 듣고 논의할 때, 8~12세 어린이들의 혼합 연령 학급에서 한 어린이가 한 가지 특별한 제안을 했다. 개가 아주머니의 죽은 남편을 대신한다거나 죽은 남편의 영혼이 어떤 사연으로 애완견에게 들어간 것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학급의 어린이들은 모두 개에게 남편의 영혼이 있는 것으로 하자는 데 합의해서 열띤 토론을 시작했다.
스티븐이 제일 먼저 다른 어린이들에 앞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급의 토론 모둠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긴 했지만 스티븐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스티븐의 아빠는 몇 년 전 돌아가셨는데 아빠의 영혼이 자신에게 들어온 적이 있다는 것이다. 스티븐은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가슴을 두 손으로 두드리더니 아빠가 자신의 심장 안에 있다고 말했다. "난 아빠의 눈을 가졌어요. 그리고 아빠가 나에게 어떻게 할지 이야기하는 것도 들을 수 있어요."
학급의 어린이들은 그의 이야기에 신비감과 경외심으로 가득 찬 듯했다. 어떻게 보면 어린이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충격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성인이 이런 대화에 참여하게 되었다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스티븐처럼 가까운 사람의 죽음과 같은 큰 경험을 어린이 간에 논의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티븐의 이야기를 토대로 어떻게 죽음과 영혼에 대한 솔직한 우리의 심정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학급의 어린이들은 이 이야기를 시작한 스티븐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싶어 했다. 스티븐 덕분에 우리는 그의 이야기에 반응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이지에 대한 보다 폭넓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스티븐은 최근 학습에 전학 온 학생이었으며 평소에는 다른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아웃사이더였다. 스티븐이 아빠의 죽음에 대한 논의를 했을 때, 학급의 다른 학생 중에 죽음과 삶에 대한 생각을 스티븐만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 갈등 해결에 대하여
어느 날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한 여학생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친구와 논쟁을 하다가 싸우게 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놀이터에서 어떤 일을 겪고 나서 이 여학생은 자신과 가장 절친한 아이가 친한 친구로 계속 남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특히, 이번 싸움이 둘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여학생은 친구에 대한 배신감과 혼란에 빠져 있었다. 교사로서 내가 즉각적으로 답변을 하거나 여느 교사드로가 마찬가지로 서로 빨리 사과하고 다시 친해게 잘 지내라고 했을 수도 있다. 학교나 유치원 같은 교육기관에서 어른들이 유아기와 아동기 어린이에게 하는 충고가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어른들은 어린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싸움은 쉽게 화해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교육현장에 있었던 교사인 나 역시 달리 생각하지는 않는다.
교사로서 그 여학생에게 빤하고 즉각적인 충고를 하기보다 모든 게 잘 될 거란 이야기를 하면서 학급에서 다른 친구들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해 보자는 제안을 했고 그 여학생 역시 동의했다. 학급에서 어린이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바로 사과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둘이 떨어져서 차분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심지어 그런 애는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었어야 한다는 남학생도 있었다. 과격한 이야기를 했던 그 남학생은 자신의 집이 이사하기 전에 동네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이전에 살던 동네에서 누군가 집 앞에 쓰레기를 자주 갖다 버렸던 적이 있었고 어떤 때는 창문이 깨진 적도 있었으며 집 앞에 주차된 아빠의 자동차가 부서져 있던 적도 있다고 했다. 그 남학생은 엄마가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하려면 그 사람을 정말 아프게 때려 주면 된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남학생의 이야기에 린다라는 여학생은 그렇게 싸우면 아무 의미 없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지적을 했다. 그 남학생의 과격한 이야기에 낄낄거리는 아이도 있었지만 학급에서 이러한 대화는 무척이나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이상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학교 밖에서 어린이들이 어떠한 일상생활을 하는지 우리가 상상하기는 어렵다. 사실 우리는 일반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아는 바가 없다. 어린이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 세계를 이야기하는 내용은 사회적 관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기도 하다. 어린이들의 가정과 학교생활은 대조적이거나 갈등을 겪을 만큼 차이가 있기도 하다.
교사의 관점에서 어린이들이 생생하게 설명하는 물리적인 충돌이나 상황이 충격적일 수도 있다. 타인에 의해 반복적으로 물리적 충돌, 즉 공격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일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당했던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복수하는 것은 무조건 나쁜 행동인가? 이런 문제에 놓여 있던 남자아이들의 부모는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는가? 린다의 명쾌한 반론은 우리로 하여금 가족의 개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의 도덕적인 심각성과 복잡성에 대해 더욱 깊게 생각해 보게 하였다.